백두남 - (5) 호가창 앞의 원숭이
불교에 대한 가장 흔하고 큰 오해라면 석가모니가 인생을 '고해'라 봤다는 것이다. 苦海, 고통의 바다라는 뜻이다. 또 일체개고(一切皆苦)라 하니 한자어로 일체(一切)는 모든 것, 개(皆)는 모두, 고(苦)는 괴로움·고통. 모든 것은 괴로움이다. 저런 뜻이라고 대부분 받아들인다. 오역에서 비롯된 오해다.
고(苦)는 본디 산스크리트어 'Dukkha'에서 왔다. 중국에서 불경을 처음 번역할 때 '두카'를 괴로울 '고'로 옮긴 것이다. 어원부터 보자면 Du는 나쁜, Kha는 수레 바퀴다. 덜컹 거리고, 삐걱 거리는 수레 바퀴. 그런 바퀴도 앞으로 가긴 간다. 해서 두카의 본래 의미는 고통이 아닌 '맘 같지 않음'에 가깝다. 생로병사는 고통이 아니다. 세상에 나오는 것, 늙는 것, 병 드는 것, 이내 죽는 것. 모두 맘 같지 않을 뿐이다.
17년의 나는 엄마 돈 천, 여친(다행히 현 와이프) 천. 합 2천을 들고 호가창 앞에 섰다. 종종 사람들에게 '코인은 17년 부터 했어요.' 하면 그들이 머릿속으로 '그때 비트가 얼마였는데, 그럼 이 새끼 대체 얼마 있는 거야.' 계산기 두들기는 게 보인다. 그러면 내가 덧붙인다. "비트를 100만에 사면, 얼마에 팔 거 같아요? 200까지 절대 못 버텨요. 130도 힘들고, 120이면 냉큼 다 팔아요. 그리고 140에 다시 사요. 그래 놓고 130에 팔고. 그런 느낌이에요. 그래서 오래 했다고 돈 번 사람 생각보다 별로 없더라고요. 게다가 그때는 시드가 워낙 작잖아요." 적는데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난다. 괴롭다. 역시 인생은 고통인가.
비트코인이 이런 거구나. 이거 된다, 일생 일대의 기회다. 해놓고 막상 사려고 보니 비싼가 싶어서 손이 잘 안 나갔다. 결국 라이트코인 이거 좀 싼데? 이 지랄 ㅋㅋ.. 2천만 원 시장가로 긁어버렸다. 손이 벌벌 떨렸다. 평가액이 찍히는데 1,985 이랬다. 뭐야 이거 왜 2천이 아니야? 패닉했다. 몇 초 지나니 2,005만 원이 됐다. 오, 대박. 냅다 팔았다. 우끼끼. KRW 19,899,380. 아까 분명 이천오만 원이었는데 사기 당했나? 거래 내역을 뜯어보니 1. 내가 보는 가격에 다 팔리는 게 아니었구나. 2. 수수료가 엄청 세구나. 그제서야 알았다. 적으면서 말이 되나 싶은데 진짜 이랬다. 아예 몰랐다. 아예. 그때의 나도 마음만은 워렌 버핏이었다. 머릿속으론 '다들 비트코인 무시한다. 오히려 기회야' 컨트래리언 띵킹! 금융은 본디 제3자에게 기대야만 하는 결함 있는 시스템이야. 아직 다들 잘 모를 뿐... 내 전부를 건다. '컨빅션 배팅!' 했지만. 막상 호가창 앞에 앉으니 그냥 원숭이1 이었다. 맘 같지 않았다.
무작정 시장가로 긁고 반대로 되긁고 하면서 그래도 기본은 알게 됐다. 놀랍게도, 놀랍지 않게도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난 더 원숭이가 되어버려. 그때는 업비트도 없을 때라 폴로닉스, 비트렉스에서 밤낮으로 틱 띠기 했다. 목표가 알람에 깨고, 알람이 안 울려도 하루에도 열두 번씩 눈이 번쩍 떠졌다. 악몽 깨듯이. 그래서 난 저 페페가 무슨 느낌인지 너무 잘 알고 있다. Sad angry red eyes pepe frog in bed looking at phone. (
https://x.com/reactjpg/status/1294905370805039105)
틱 띠기 원숭이의 두개골 안에도 나름의 생각이 있었다. 매일 1%씩만 먹으면 1년이면 37.78배다. 나는 쿨하게 1%씩만 먹는다. 옆자리 재단 집 아들이 알려준 노하우기도 했다. 걔는 그때 코인원 마진을 했는데, 다행히도 나는 겁이 좀 있는 편이라 그건 안 건드렸다. 엄마가 말하길 "사람이 겁이 좀 있어야, 신세 덜 망친다." 했는데 인생을 관통하는 명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거 치고는 겁도 없이 2천을 빌렸다. 거래를 저 따위로 하니 시드도 멘탈도 조금씩 깎였는데 정신 차려보니 1,400만 원쯤 남았나. 문득 너무 겁이 났다. 월급이 120이었다. 와 이거 조조됐다.
당시 직장에서도 단연 화두는 '블록체인'이었다. 아무래도 딥-테크 VC라 비트코인보다 이더리움, 스마트 컨트랙트 이런 쪽을 주로 봤다. 또 신세계였다. 이번에는 진짜 정말 느낌이 왔다. 스마트 컨트랙트가 세상을 바꾼다. 내가 닷컴, 인터넷, 모바일 태동기를 모두 놓쳤지만 이것만은 안 놓친다. 게다가 바야흐로 대 ICO 시대였다. EOS가 하루에 대충 1,100만 달러씩 땡기고 있었다. 미쳤다. 나 이거 할래.
당시 비탈릭은 거의 신이었고, 그 분께서는 딱 2개의 프로젝트에만 어드바이저로 들어가 있었다. 그 중 하나에서 채용공고가 떴다. 미쳤다. 나 이거 할래.